공지사항

[2018. 10. 15~18] 자주평화의 한길, 고 김판태 대표 전북시민사회장-추모의 밤, 발인, 노제, 하관식, 삼우제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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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평화의 한길, 고 김판태 군산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대표 전북시민사회장
추모의 밤, 발인, 노제, 하관식

추모의 밤 : 10/15 월 오후 7시,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 10/16 화 오전 7시 30분,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노제 : 10/16 화, 군산 미군기지
하관식 : 10/16 화 오후 4시, 마석 모란공원
삼우제 : 10/18 목, 마석 모란공원

자주와 평화통일, 민중해방의 한길을 뚝심 있게 걸었던 당당한 사람
반통일, 반민중 세력과 맞선 싸움의 최전선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던 굳센 사람
자신에게는 엄격하되 가족과 동지들을 살뜰히 보살폈던 따뜻한 사람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를 가슴에 묻습니다. 
자주평화통일의 그 날, 다시 만나요.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의 장례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삶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15일 추모의 밤부터 16일 하관식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수 많은 동지들과 평통사 회원이 유족들과 함께 하였고 ‘자주평화의 한길’이었던 그 삶을 기억했습니다.





<김판태 대표의 삶의 기록을 담은 영상, 한국의 자주 평화 통일 운동의 대표적 현장마다 그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고 김판태 대표는 1999년부터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사무처장을 맡아 미대사관 월례집회를 주도하며 매향리 폭격장 폐쇄, 소파개정, 용산 미군기지 반환 등의 활동에 앞장서 왔습니다. 특히 2001년에는 굴욕적이고 기만적인 소파 개정안 국회 비준 동의 거부를 촉구하며 국회에서 할복하였고(오른쪽 아래), 2002년 효순미선 여중생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 직후 현장 조사 및 진상규명 활동에 나서며 유족들과 함께 미대사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왼쪽)


2006년 만리포 한미연합상륙훈련 저지투쟁에 참여하며 불법적인 대북 공세적 훈련 장갑차량을 막아나섰고(위쪽), 2007년에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직접 작전통제권 즉각 환수 촉구 서한을 전달(신라호텔)하려다 경찰들에게 무참히 끌려나오기도 했습니다.(아래 왼쪽) 2017년에는 성주 소성리 사드 추가 배치에 항의하며 두 팔에 파이프를 끼우고 무려 13시간 이상을 버티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백해무익한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도 했습니다.(아래 가운데) 2015년에는 한반도의 재침략을 노리는 일본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한미일동맹 구축을 반대하는 일본 현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아래 오른쪽)


고 김판태 대표는 2008년부터 군산미군기지가 있는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며 군산평통사, 전주평통사, 익산평통사, 김제평통사 조직 운영을 지원하였고, 군산 우리땅 되찾기 시민모임 운영위원. 군산 미군기지 앞 정례 집회와 캠페인, 군산미군기지 띠잇기, 평화대행진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2017년부터 군산평통사 대표를 맡아 사드배치반대 전북대책위 집행위원장을 겸임하며 사드 배치 저지와 한미일동맹 구축 저지를 위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김판태 대표와 함께 자주평화통일 운동을 전개했던 이들은 장례식장을 찾아, 그의 애석한 죽음에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고인을 추모하는 글을 작성해 붙이기도 했습니다. 


추모의 밤

15일 오후 7시, 전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의 밤을 진행했습니다. 장소가 비좁아 밖에 서서 추모의 밤에 참가할 만큼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를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추모영상을 보고 약력을 소개하는 내내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너무나 우직하게 한길을 걸었던삶에 대해 추모하는 눈물임을 알았니다.


사람들은 추모시와 추모가로 김판태 군산 평통사 대표를 추모했으며, 장례위원장인 노병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북지역본부장은 추도사를 통해 “동지는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한 평생을 자주, 평화와 통일 운동, 민중 해방의 한길로 걸어오셨습니다. 동지는 고난과 역경이 훤히 보이는 길이어도 주저하지 않고 앞장섰습니다.”며 김판태 군산평통사 대표를 기억했습니다.


또 문규현 평통사 상임대표는 조사를 통해 김판태 대표가 몸과 마음을 다해 투쟁해왔던 '한미SOFA 개정 투쟁‘, '효순미선사건 진상규명 투쟁’, ‘한미연합연습 중단 투쟁’, ‘사드배치 철회투쟁’을 소개하며 “막중한 과제 속에서도 언제나 씩씩한 모습과 환한 미소가 빛났다.”며 김판태 대표를 기억했고 “당신이 못 다 걷어낸 분단과 전쟁의 철조망, 이제 우리가 힘을 합쳐 마저 치우겠습니다.”라며 김판태 대표의 뜻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재봉 원광대 교수와 김연태 전 군산평통사 대표도 “얄미울 정도로 헌신적이었으며, 너무할 정도로 철저했다”, “늘 환하게 웃던 모습이 보고 싶다.”며 김판태 대표의 삶과 인연을 회고했으며 박운옥 군산평통사 부대표는 군산에서 열렸던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에서 김판태 대표를 처음 만났던 인연을 소개하며 그동안 부대표로서 “왜 나는 그 동안 대표님의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는지 후회된다.”며 소회를 밝혔고 “이제는 대표님이 가신 자주평화의 한길에 미약하지만 따르겠다.”고 결의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날 추모의 밤에 함께한 소성리, 김천 주민들은 김판태 대표가 그동안 어떻게 현장투쟁에 임했는지, 사드철회 투쟁에서 김판태 대표가 보여줬던 모습을 소개했는데 추모의 밤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누구보다 역동적이었던 김판태 대표의 투쟁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사드철회 투쟁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소성리가 사드배치 지역으로 선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이 김판태 대표님이었다.”며 “대표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부녀회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거예요.’"라고 이야기해줬던 일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이들이 몫을 다하겠습니다. 사드를 뽑아낼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대표님과 약속한 대로 사드가 뽑혀나가는 날, 마을에서 소를 잡고 대표님을 기억하며, 환호성을 지르겠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유족을 대표해서 김판태 대표의 동생 김건우님과 호상인 김대송 익산평통사 대표는 “멀리에서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도 ‘자주평화의 한길’,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인사하였습니다.
또한 추모의 밤에 참가한 사람들은 김판태 대표가 삶으로 보여줬던 ‘자주평화의 한길’을 기억하며 그 길을 동행할 것을 굳게 다짐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으며, 영전에 헌화하였습니다.




발인과 노제

16일 오전 7시 30분, 발인이 진행되었습니다. 감판태 대표가 매일같이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활동했던 군산평통사 사무실을 들렀습니다. 김판태 대표의 10년 간의 군산평통사 활동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김판태 대표가 항상 영상차를 세워두고 캠페인 활동을 했던 군산 롯데마트 앞에 국화꽃을 놓으며 김판태 대표의 삶을 되새겼습니다.


오전 9시에는 군산의 불평등한 한미동맹의 상징 중의 하나인 군산 미군기지 앞에서 노제를 진행했습니다. 그동안 함께 투쟁했던 많은 사람들이 추모가와 추모사로 함께하였고 씻김굿을 진행하였습니다.


 


하관식

오후 김판태 대표가 잠들 안식처인 마석모란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생전에 김판태 대표가 이루기 위한 자주평화통일의 뜻이 새겨진 만장을 앞세우고, 이어 유족과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이 뒤따랐습니다. 




이어 하관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유영재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은 고별사를 통해 “1989년 남동공단에서 김판태 대표를 처음 만났고 그 인연이 30년 가까이 이어졌다.”며 김판태 대표와의 인연을 소개했고 “제가 평통사 상근을 시작하게 된 것도 김판태 대표의 할복투쟁의 영향이 컸습니다. 내가 결단을 내리지 못 할 때 나를 이끌어 준 것이 김판태 대표였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사(私)보다는 공(公)을 앞세운 실천적 태도가 당신을 반미자주투쟁의 선봉이 되도록 한 것이죠.”라며 김판태 대표를 기억했습니다. 또 장례기간 중에 있었던 SM-3 도입 철회과 불평등한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대응을 소개하며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가장 앞장섰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를 여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고 다짐했습니다.


또 김판태 대표의 후배로서 이주은 평통사 청년팀장은 “잠깐의 쉬는 시간에도 어떻게 더 잘 실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이었습니다. 하루 한시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라며 김판태 대표를 기억했습니다. 지난 9월 사드 반입 저지 투쟁에서 김판태 대표가 가장 힘들고 고된 역할을 맡았던 일화를 소개하며 “우리 후배들이 자주평화의 한길을 걸으신 선배님 뒤를 따라 평통사 정체성을 확고히 정립하고 투쟁하겠습니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실현으로 자주평화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가며 이를 가로막는 한미동맹 해체를 위해 온힘을 다하겠습니다. 평통사의 실천, 조직 역량을 키우는데 앞장서겠습니다.”며 평통사에게 주어진 과제를 헤쳐 나가겠다며 후배들을 대표해 다짐했습니다.

이어 추모가 ‘그대 잘 가라’를 부르며 김판태 대표가 가는 마지막 길에 고별을 표했습니다.



유족들을 대표해서 부인 최소영님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먼 길 마다않고 함께 해주신분들께 감사하다. 이제는 시대의 아픔을 지고 살아온 자랑스러운 남편, 김판태를 영원히 보내려 한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또 김판태 대표가 투병 중에 했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 돈은 분단의 아픔인 장기수 선생님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 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별이 되려는 존경하는 남편과 유족들을 위해,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유골위에 파란색 한반도가 있는 평통사 깃발을 올려놓고 흙을 덮는 취토를 진행하였고, 사람들은 그 위에 마음을 담아 헌화하였습니다. 이어 마지막 고인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김판태 대표를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에 참가자들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문규현 상임대표는 '바오로'라는 본인의 세례명을 김판태 대표에게 내렸고, 고영대 공동대표는 늘 투쟁 앞에서 당당했으며 항암치료의 고통속에서도 다른 이들을 먼저 배려했던 김판태 대표의 영정을 가슴에 품으며 아파했습니다. 





유족들과 평통사 상근일꾼들 등은 마지막으로 김판태 대표의 영정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김판태 대표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쳤습니다. 김판태 대표의 묘지에서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곳에 홍근수 전 상임대표님 묘지가 있어 김판태 대표가 외롭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전국 각지에서 몸과 마음으로 김판태 대표가 이 땅을 떠나는 길에 함께 해주신 회원여러분 감사드립니다. 평통사는 김판태 대표를 가슴에 묻습니다. 김판태 대표가 걸어왔던 ‘자주평화의 한길’을 남은 평통사 회원들이 힘 있게 열어 나갑시다.


삼우제(10/18)

18일에는 장례 이후 묘의 상태를 살필 겸해서 고영대 공동대표와 서울 회원들이 모란공원으로 가서 삼우제를 지냈습니다. 묘지를 화강암으로 두른 상석과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고, 묘지 단장도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김판태 대표에 술을 올리며 넋이 편안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삼우제 후에는 홍근수 목사님 묘지와 허세욱 열사의 묘지도 돌아보며 인사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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