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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통사 30주년] 30년의 기록, 평통史 3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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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의 기록, 평통史 30장면
 

평통사 30주년을 맞아, 평통사 30년의 역사를 30장면으로 추렸다. 평통사가 전개한 주요 실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과 현장의 사진들을 통해 평통사 30년을 살펴본다. 

 

1. '통합과 단결의 모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창립(1994)
 

1994. 6. 4. 종로성당에서 열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창립 순간


1994년 6월 4일, 종로성당에서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가 열렸다. “두 단체(‘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회의’와 ‘새로운평화운동대중단체’)가 통합하여 하나의 조직을 발족시킴으로써 민족민주운동진영에 통합과 단결의 모범을 세웠으며 평화와 통일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큰 책임과 역할을 맡게 되었다”(1994. 7. 「평화와통일 을여는사람들」 1호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창립 선언문(바로보기)

 

2. 대중적 평화군축운동의 시작 국방비 삭감운동(1995)
 

1994. 11. 26. 탑골공원에서 국방비 삭감 1만인 엽서 보내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평통사가 창립된 1990년대 중반 세계정세는 탈냉전에 발맞추어 전 세계적으로 군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한반도에서만 주한미군이 증강되고 국방비가 9% 넘게 증가하였다. 이에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은 ‘방위비 삭감과 평화를 위한 연대모임’에 참여하여 방위비(국방비) 삭감을 요구하는 엽서 쓰기 캠페인과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3. 불평등한 한미소파의 부분 개정을 이끌어낸 한미소파(SOFA) 개정 투쟁(1999-2001)
 

2000. 8. 1. 명동성당 앞에서 소파(SOFA) 전면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태원 조중필 씨 피살 사건(1997.4. 3), 조춘식 집단폭행사건(1998.1.3), 주한미군 군무원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2000. 2. 9) 등 미군 범죄가 줄을 잇자, 평통사는 미 대사관 반미연대 월례집회, 명동성당 장기 농성(108일), 용산 미군기지 앞 노숙농성 등을 벌이며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 투쟁 결과 한미소파가 개정되었지만, 국민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부분 개정(2001. 2)에 그치고 말았다. 이에 당시 김판태 ‘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행동’ 사무처장은 국회 상임위에서 기만적인 한미소파 개정에 대해 할복으로 항의하였다. 이에 유럽 평통사 오복자 회원은 “김판태 님의 건강을 염려하며 멀리 독일에서 병문안을 드립니다. …… 아직도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져야하는 조국의 현실 앞에 답답할 뿐입니다”라고 심정을 알려왔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주민들의 땅과 어장을 빼앗아 만든 아시아 유일의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일명 쿠니 사격장, 728만 평). 이후 매향리 주민들의 삶은 미군 폭격과 소음 때문에 지옥으로 변했다. 2000년 5월 8일에도 또다시 A-10기 미군 폭격기 폭탄 투하 사건이 터졌다. 이에 평통사는 2000년 6월 6일 1차 범국민대회를 시작으로 ‘매향리미군국제폭격장폐쇄범국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여러 차례의 범국민대회 개최와 폭격장 철조망 걷어내기, 폭격장 진입 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4. 주한미군에 대한 최초의 승리,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폐쇄(2000-2005)
 

2005. 8. 15. 매향리 폭격장이 폐쇄되고 철조망에 미군폭격장 폐쇄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2000년 8월 마침내 육상사격장이 폐쇄되고, 2005년 8월에는 해상사격장까지 폐쇄되었다. 미국과 미군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에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의 전만규위원장은 “광복 60주년이라고 하지만, 매향리 주민들은 54년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며 감격어린 소회를 밝혔다.

 

5. 무기도입 반대 운동의 시초, 대형 공격용 헬기 도입 중단 요구(2000-2001)
 

2001. 5. 국방부 앞 평화군축 월례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햇볕정책을 지지해 주는 대가로 대형공격헬기(AH-X) 구매를 강요한 부시 정권의 압력에 굴복해 국방부는 2조 원 규모의 아파치 롱보(AH 64D) 36대를 도입 하려고 했다. 이에 평통사는 매달 국방부 앞 집회와 한 달 동안의 릴레이 1인 시위,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시민사회단체로서는 처음으로 특정 무기 도입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국방부 앞 집회에서 아파치 헬기 모형 화형식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불을 끄려는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연합뉴스(2001. 3. 28)를 비롯해 중앙 8개 일간지가 이 투쟁을 다뤘을 정도로 크게 여론화되었다.

 

6. 최초의 '그림자 시위'로 주목받은 미 엠디(MD) 구축 반대 활동(2001-2002)
 

2001. 5. 9. 종묘 앞에서 미국이 MD로 전 세계를 장악하려는 그림을 배경으로 부시 정권 규탄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군림하기 위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계획. 이를 한국에 강요하기 위해 아미티지 미 국무부 부장관이 2001년 5월 방한하였다. 이에 평통사는 인천공항에서부터 회담장, 숙소(하얏트 호텔)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정을 쫓아다니며 규탄 투쟁을 벌였다. 언론은 이를 ‘그림자 시위’로 명명하였다. 이른바 ‘그림자 시위’의 효시인 셈이다. 평통사는 또한 미사일 방어 체계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게 될 대표적인 군산복합체이자 매향리 폭격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록히드마틴 한국지사(여의도 63빌딩 46층)를 항의 방문하고 그 앞에서 집회와 기자회견,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7. 미국 압력과 국방부의 대미 굴욕에 맞서 국민들과 함께한 F-15K 도입 저지 투쟁(2001-2003)

 

2002. 3. 26. F-15K 도입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방부로 진입했다

 

4조 원이 넘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은 부시 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김대중 정권과 국방부가 끝내 다른 기종에 비해 성능이 한참 떨어진 F-15K를 선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평통사는 국방부 앞 집회와 농성 투쟁을 전개하고, 학생들과 함께 국방부 진입 투쟁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형수 실무자가 구속되어 옥고를 치러야했다. 또한 청와대 앞 신문고 두드리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사상 최초의 청와대 민원실 농성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순희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후진하는 경찰차에 치여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한편 F-X 시험평가 부단장인 조주형 대령은 F-X 사업 기종 결정에서 미국과 국방부의 외압이 있었음을 알리는 양심선언으로 옥고를 치르고, 이등병으로 강등되고 연금을 박탈당했다.

 

8. 대중적 반미투쟁의 새 지평을 연 미군 장갑차 압사 두 여중생 투쟁(2002)

 

2002. 6. 29. 시청광장 앞에서 효순미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1인시위를 진행했다


평통사는 두 여중생 사건을 알리기 위해 월드컵 응원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수십만의 시민 속으로 유인물을 들고 들어갔다. 많은 우려를 갖고 시작한 모험적인 홍보 활동이지만,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오히려 미안하다며 자발적으로 유인물을 나눠 주는 등 적극 호응해주어 월드컵 열기에 자칫 묻힐 뻔했던 두 여중생 사건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해 11월, 주한미군 군사법정은 가해 미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운전병은 두 여중생을 볼 수 없었고, 통신장비가 고장나 장갑차를 멈추도록 교신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으로 한국 검찰과 미군 검찰이 짜고 사실을 은폐했다. 
 

9. 대중화·전문화·전국화 기치 아래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재창립(2003)
 

2003. 6. 6. 동국대에서 열린 평통사 재창립 대회의 모습


평통사가 재창립한 시기는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부시 정권의 불법적인 이라크 침공으로 국내에서는 반전평화 투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이러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평통사는 매향리와 두 여중생 투쟁 등을 통해 쌓은 자주·평화운동의 실천적·조직적 성과를 토대로 대중화·전문화·전국화의 기치 아래 재창립하게 된다. “오늘 재창립을 계기로 평통사 운동은 소수의 운동이 아니라 다수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으로, 아마추어적 활동이 아니라 보다 책임 있고 전문성을 갖춘 프로 운동으로, 지역에 한정된 운동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운동으로 변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003. 6. 홍근수 상임대표 대회사) 노래꾼 안치환은 “살얼음판 같은 땅에서 가슴이 움직이고 심장이 뛰고 양심이 있고 정의를 생각하고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평통사에 동참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흔쾌히 홍보대사를 맡았다. (2003. 8, 「평화누리 통일누리」 41호 인터뷰)

 

10. 가치와 침략을 위한 신한미동맹의 문제점을 다룬 한미상호방위조약 개·폐 토론회(2003)

 

2003. 10. 15. '신한미상호방위조약 공청회'에 정부 쪽을 대표해서 토론자로 참석한 김태효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김태우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첨석했다


부시 정권은 변화된 세계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을 대북 방어의 붙박이군에서 세계 분쟁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하는 등, 신한미동맹 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이에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의 위법성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발동 요건과 적용 범위를 명확히 밝히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제거하는 조약 개폐는 한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전제였다. 평통사는 2003년 3월부터 한미관계 연구모임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7월 29일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자주적 개정안’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 15 일 ‘신한미상호방위조약(안)’에 대한 시민사회와 정부 쪽 의견을 수렴하기 위하여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행사 기도에 맞춰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관련 협정들에 대한 연구와 토론은 물론, 입장을 계속 발표하였다.

 

11. 주한미군기지 재배치 협상 대응 활동(2003-2004)
 

2004. 12. 7.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 안에서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정비준에 항의하며 의사봉을 붙잡은 모습(위)과 회의장 밖에서 항의하다 제압당하는 모습(아래)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YRP)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 개정 협정을 통해 미국은 경기도 평택에 100년 가는 최고의 기지를 짓겠다고 공언하였다. 한국군 협상 대표는 이러한 미국의 욕심을 “미국이 팔자를 고치려 한다”며 비웃었다. 2004년 12월 7일 오후 2시부터 국회 본관 301호실에서 비공개로 열린 통일 외교통상위원회에서는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과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 협정안에 대한 비준동의가 다뤄질 예정이었다. 평통사 회원과 평택 주민 등 6명은 이에 항의하다 결국 끌려 나오고 말았다. 평통사 박석분 국장은 회의장안으로 들어가 임채정 상임위원장의 의사봉을 붙잡고 비준동의안 통과를 저지하려 했으나 경위에게 연행되어 경찰에 넘겨 졌다. 이날 국회에는 주민도, 국민도, 국가 이익도 없었다. 오로지 미국의 압력에 굴종하는 여야 의원들만 있었다.


12. 미국의 해외 미군기지 재배치 전략에 맞선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2003-2007)
 

2005. 7. 10.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회를 진행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1만여 명은 대추리 푸른 들판을 지나 미군기지를 둘러싸는 인간띠잇기를 하였다.


미군기지 이전협상이 시작된 2003년부터 평통사는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을 전개하는 대추리 주민들과 연대했다. 2005년 7월 10일,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반도 전쟁 반대를 위한 평화대행진이 평택 팽성읍 대추리 분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시민 1만여 명은 대추리 푸른 들판을 지나 미군기지를 둘러싸는 인간띠잇기를 하였다. 이날 300여 명의 평통사 회원들이 참석했다. 고향땅 황새울을 지키겠다고 나선 대추리 주민들도 투쟁 과정에서 미국의 패권전략을 알게 되면서 “오는 미군 막아내고, 있는 미군 몰아내자!”라는 전략적 구호를 내걸었다.
 

13. 한미연합연습의 공격성과 불법성을 세계에 알린 만리포 상륙훈련 반대 투쟁(2006)
 

2006. 3. 31. 만리포 해변에서 상륙훈련 중인 탱크를 막아선 모습


평통사는 2006년 3월, 한미연합 해병대 상륙훈련이 열리는 만리포 해변에서 온몸으로 상륙훈련 중인 미군 탱크를 막아서며 공격적인 대북 전쟁연습 중단을 촉구하는 반전평화행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오마이뉴스가 포착한 만리포 현장의 지휘 상황을 통해 당시 한미연합 상륙훈련이 ‘작전계획 5027-04’에 따라 평양 점령을 목표로 이루어지는 훈련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평통사는 2007년에는 한국 평화운동 사상 처음으로 한미연합사 전쟁지휘소(탱고) 앞 평화행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는 만리포 투쟁과 더불어 포항 무적훈련장 연합연습 저지 투쟁 등 이후 전국적 차원의 한미연합연습 중단 촉구 활동의 효시가 되었다.

 

14. 국민적 관심을 촉구한 전시작전통제권 전면 환수 투쟁(2007)
 

2007. 11. 6. 신라호텔에서 미 국방장관에게 작전통제권 즉각 반환 요구 서한을 전달하려다 끌려나가는 모습


노무현 정권은 작전통제권 환수를 의욕적으로 시도했다. 그러나 한미 협상 결과는 작전통제권을 환수한 후에도 공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여전히 미 7공군 사령관이 행사한다는 것이다. 결국 껍데기만 돌려받는 셈이다. 이에 평통사는 워크숍, 토론회,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작전통제권 환수의 기만성을 알리고 전면 반환을 촉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한국을 방문한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 작전통제권 즉각 반환을 촉구하는 서한 전달을 시도하기도 했다. 평통사 회원들은 게이츠 장관이 묵고 있던 신라호텔에서 게이츠 장관이 로비에 나타나는 순간, 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평통사 회원들은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작전통제권 즉각 전면 반환”을 외쳤다.

 

15. 전쟁과 분단을 끝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운동(2008)
 

2008. 3. 24. 민주노총 강당에서 진행한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선포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는 백기완 선생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 10·3 합의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전망이 가시화되었다. 이에 평통사는 2008년 3월 24일,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운동 선포식의 닻을 올렸다. 이날 평화통일연구소가 기초한 한반도 평화협정(안)도 발표하였다. 평통사의 한반도 평화협정(안)의 특징은 북한의 핵포기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폐기, 조중동맹과 한미동맹 폐기를 동시 행동으로 해결하자는 데 있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한반도 평화협정(안)에 대해 “평통사가 공들여 결집해 낸 한국 집단지성의 소중한 결실”로 “한국 평화운동의 귀중한 금자탑”이라고 평가했다. 평화협정 실현 운동은 2008~2012년까지 추진위원 9,638명, 길잡이 43,005명이 참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2013년~2017년까지 2기 평화협정 실현 운동으로 ‘평화홀씨 운동’을 전개했다.
 

16. 한미 당국도 전문성을 인정한 주한미군주둔비부담 협상 대응 활동(2007-2014)
 

2014. 1 .13. 외교부 앞에서 굴욕적인 9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을 규탄하며 외교부 현판에 '사대'라는 글자를 붙이려고 하자, 경찰이 막고 있다. (사진출처: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국은 부담하지 않아도되는 주한미군주둔비를 미국에 지원해 왔을 뿐만 아니라 과도하게 지원하고 있다. 이에 평통사는 미국 측 자료를 확보, 분석하여 미국이 부담하기로 되어있는 미2사단 이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이 돈을 빼 돌려 최소한 3천억 원 이상의 이자소득을 챙긴 사실과, 한국이 주한미군주둔비 중 비인적주둔비를 50% 이상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평통사의 활동에 국회의원들과 정부 당국자들도 경의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또다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한미군주둔비부담금을 터무니없이 올려주었다. 이른바 ‘미국 퍼주기’다. 이에 평통사는 2014년 1월 13일, 주한미군주둔비부담금 협상 결과를 규탄하며 한국 정부의 대미 굴욕적 협상을 사대 외교로 비꼬았다.


17. 한반도 핵문제 해법을 호소한 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회의 참가(1995, 2005, 2010) 
 

2010. 5. 2. 평통사 대표단이 5,000여 명이 운집한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집회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고 있다


평통사는 한국 평화운동 사상 최초로 1995년 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회의에 참가하여 한국의 분단 현실, 미군 범죄, 반핵평화운동 현황을 알렸다. 임종철·김창수·유종순·김형태·최병수 등이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2005년에는 미국의 대북 핵 선제공격전략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및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임종철·변연식·박석분·유홍이 대표단 으로 참가했다. 2010년에는 각국 정부 대표와 평화활동가들에게 북핵 포기와 미국의 대북 적 대정책 폐기를 동시 행동으로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이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창했다. 4월 30일~5월 1일 NGO 국제대회 기조연설, 5월 2일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 타임스퀘어 광장 연설과 유엔본부 앞 함머슐츠 광장까지의 행진, 5월 7일 NGO 총회 등 공식 회의 석상에서의 연설과 평통사 주최 워크숍 등을 통해 이 같은 평통사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알린 결과, 다수의 참석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고 평통사(SPARK)를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에는 고영대·변연식·오혜란·박석진·이재원·이현정·이주연 등이 평통사 대표단으로 활동했다.
 

18. 강정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끌어올린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운동(2010-2013) 
 

2011. 5. 28. 구럼비바위 위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저지 투쟁을 전국적 이슈로 확산시킨 계기가 된 평통사의 강정 평화올레 행사의 한 장면 (사진출처: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0년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자, 평통사는 김종일 등을 현장에 파견하여 주민과 결합한 현장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2011년 5월, 평통사가 중심이 된 강정 평화올레와 전국 집중 촛불문화제는 강정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국정원 등 공안 세력이 평통사를 ‘종북’으로 음해했지만, 평통사는 주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인간사슬, 케이슨 점거 등의 선도투쟁은 물론, 강정평화대행진, 콘서트, 강정지원행사·캠페인, 촛불이어켜기 등 다양한 대중적 실천을 전개하였다. 또한 예산 삭감 투쟁을 주도하여 2012년 제주해군기지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시키는 보기 드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 위축 노린 국가보안법 탄압에 맞서(2012)
 

2012. 2. 8.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충정로에 있는 평통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후 압수물품을 차량으로 옮기고 있는 장면 (사진출처: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이명박 정권 마지막 해인 2012년 2월 8일, 국정원은 평통사 오혜란 전 사무처장을 비롯하여 인천·부천·군산·대구·대전충청 지역 사무국장 등 총 9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그리고 2012년 대선 다음 날인 12월 20일부터 국가보안법 위반(7조 5항 이적동 조) 혐의로 차례로 기소했다. 평통사가 창립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의 조직적 탄압을 받게 된 것이다. 평통사에 대한 공안 탄압은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위축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 결과 오혜란 전 사무처장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2014. 2. 21). 평통사가 북한과의 어떤 연계도 없이 독창적으로 생산한 내용으로 활동해 왔다는 것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2017년 12월 5일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다. (평통사 국가보안법 사건 9명 전원 무죄 확정에 대한 성명)

 

20. 한반도 재침략 노리는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 저지 활동(2012-2014)
 

2014. 6. 19.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아베 정권의 '고도 담화 검정' 보고서 발표(2014. 6. 20)을 하루 앞두고 일본대사관 앞 도로에 '집단자위권 행사 반대'라는 글씨를 스프레이로 쓰고 있다(사진출처: 민중의 소리 김철수 기자)


일본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자위권 행사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평통사는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에 항의하며 일본대사관 앞 집회와 기자회견, 항의 서한 전달 등의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투쟁의 전국적 확산을 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에 안이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취할 뿐만 아니라,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양해 각서 체결로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과 한미일 삼각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여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뒷받침하려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도 항의 투쟁을 전개했다. 

 

21. 미국의 한미일 동맹 구축 기도에 맞선 한일 '위안부' 야합 폐기 투쟁(2015)
 

2015. 12. 28. 외교부 앞. 한일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나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평통사. [사진 출처: 중앙일보]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권은 그동안 한일 군사동맹 구축의 걸림돌로 작용해 온 ‘위안부’ 문제를 졸속 야합 처리했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일본 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도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합의는 해당사자들의 의사에 반할 뿐 아니라 불법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굴욕 외교의 전형이었다. 이 같은 기만적 야합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 구축을 통해 주로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를 강압하여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토대로 미국은 2016년 11월에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관철하고 2017년 4월에 사드 미사일체계를 한국에 배치하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현실화시켜 나갔다.

평통사는 한일 위안부 야합이 한미일 군사동맹의 사전 정지작업임을 간파하고 그 본질적 문제와 이후 파장에 대해 기자회견과 집회, 논평 등을 통해 가장 앞장서 그 문제점을 알려나갔다.

 

22. 불법 사드배치 원천 무효(2016-2017)
 

2017.3.18. 소성리에서 5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사진:오마이뉴스)


박근혜 정부가 ‘북핵미사일 대응 위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평통사는 ‘남북 간 길이가 짧은 한반도에서 사드와 미사일방어체계는 아무런 군사적 효용성이 없다’며 정부 주장의 기만성을 밝혀냈다. 성주로 사드 배치가 결정된 후 주민들은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배치 최적지는 없다”는 평통사의 구호를 즉각 채택하였다. 사드 배치를 예견하고 투쟁해 온 평통사의 활동이 주민들이 투쟁을 즉각 전개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이다.

2017년 평통사는 사드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배치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사드 배치는 한미간 조약 체결을 통해서만 가능한데도 조약은커녕 기관 간 약정조차 없었던 것이다. 평통사가 제시한 “불법 사드배치 원천 무효” 구호는 성주 김천 주민 투쟁의 정당성에 더욱 확신을 주는 것이었다.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 없음과 사드 배치의 불법성을 제기하며 대중적 설득력과 근거를 갖춘 평통사의 활동은 사드배치철회투쟁이 대중적으로 전개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3. 한국원폭피해자 문제 유엔에서 최초로 제기한 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 회의 참가(2015)
 

2015.4.26 유엔본부 앞 함머슐츠 광장까지 행진하는 평통사 대표단


1. “미일 정부는 우리가 모두 죽기만을 기다리는가?”
평통사는 창립 이래 지속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재검토회의에 참가해왔다. 2015년에는 한국원폭피해자문제를 알리는데 역점을 기울였다. 한국원폭피해자들은 처음 참가한 유엔 국제회의에서 원폭사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제기했다. 심진태, 김봉대는 엔지오 사전대회(4. 25)에서 한국피폭자 문제에 대해 연설한데 이어 2015. 5. 1 유엔본부에서 열린 대정부 시민사회 발표장에서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이 유엔에서 처음으로 한국피폭자문제를 제기하면서 한국 원폭피해자에 대한 미일 정부의 인정, 조사, 사죄, 배상을 요구했다.

2. “오바마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위선을 버리고 대북 정책을 전환해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에 나서라” 
평통사는 또한 2015. 5. 1 유엔본부에서 열린 대정부 시민사회 주제 발언 (한반도 핵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오바마 정부의 무능과 위선을 들고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평통사 발표가 시작되자 회의장은 순간 긴장감이 흘렀다. 20여 명의 시민사회 대표들의 발표 중 유일하게 미국 정부를 직접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고영대, 오혜란, 오미정, 김한나, 심진태, 김봉대, 최봉태가 평통사 대표단으로 활동했고, 재미 청년단체 노둣돌의 이주연, 이현정, 김세연, 김대니 등이 통역과 번역을 지원했다.
 

24. 촛불은 핵·동맹보다 강하다. 한반도 전쟁과 핵대결을 막는 평화의 촛불을 들다(2018)
 

2018년 3월 24일, 90여 종교·시민·청소년·풀뿌리 단체가 평화촛불추진위에 참여하였고,

광화문 광장에서 1,300여명이 모여 한미군사연습과 북핵·미사일 실험 중단, 한반도 비핵와와 평화협정 동시/단계적 실현을 촉구하는 평화촛불을 들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패럴림픽을 계기로 어렵게 조성된 남·북·미 사이의 대화 분위기는 올림픽이후 한미 군사연습 재개와 핵대결이 벌어지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평통사는 2월 1일, 평화촛불을 긴급하게 제안하고 진보시민단체, 종교계 등 각계를 찾아다니며 평화촛불 참가를 호소했다. 90여 종교·시민·청소년·풀뿌리 단체가 평화촛불추진위에 참여하였고, 3월 24일, 광화문 광장에서 1,300여명이 모여 한미군사연습과 북핵·미사일실험 중단, 한반도 비핵와와 평화협정 동시/단계적 실현을 촉구하는 평화촛불을 들었다.
 

남북의 정상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한 4.27 판문점 선언이 나오고,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6월 9일에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평화협정 체결, 북미 불가침과 북미 수교 등)를 한반도 비핵화와 동시에 실현할 것을 촉구하는 2차 평화촛불을 들었다.
 

평화촛불은 시민진보진영을 통틀어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기 위한 정세의 핵심요구를 틀어쥐고 대응한 유일한 실천이었고, 새로운 평화세력을 모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으며, 향후 더욱 힘찬 실천을 위해 2~3천의 새로운 평화촛불을 모아내도록 하는 과제가 제기됐다.


25. '대북제재 해제! 평화협정 체결!'삼보일배 행진을 하던 날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다(2019.6.30)
 

2019. 6. 30.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방한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재제해제, 대북안전보장 제공,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평화행진을 진행했다


하노이 북미회담(2019.2) 결렬로 북미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방한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해 평통사는 ‘재제해제, 대북안전보장 제공,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삼보일배 평화행진을 벌였다. 경찰은 경호권을 내세워 광화문 일대 모든 집회를 제한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 집회신고를 낸 50여개 단체 중 유일하게 평통사의 삼보일배 평화행동만이 승소하여 집회시위의 권리를 쟁취하였다. 트럼프 대통령 차량이 세종문화회관 앞을 지나기 직전, 경찰들은 참가자들을 세종문화회관 계단 맨 끝까지 밀어냈다. 평통사 회원들은 트럼프 대통령 차량에서 잘 보이고 들리도록 목마를 태워 현수막을 높이 들고, 대형 앰프를 통해 “제재해제,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차량 창문을 내려 구호를 듣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오자 참가자들은 환호하였다. 많은 단체들이 트럼프 방한 반대를 외치다 판문점 북미회담 개최 소식에 트럼프 지지로(?) 입장을 바꾸는 갈지자 대응을 하는 상황에서 평통사의 삼보일배 평화행동은 과학적 정세인식에 근거한 회원들의 헌신성과 대중적 호소력이 빛나는 투쟁이었다.

 

26. 소성리는 싸우고 있다. 사드 추가배치 저지 결사 저항의 날, 그 후 (2017.9.7-2020)
 

2017년 9월 6일, 사드 추가배치가 임박했다는 보도에 주민들과 지킴이 약 800명이 소성리로 모였다. 평통사는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상임대표부터 신입회원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투쟁했다.


2017년 박근혜 적폐정권이 사드 배치를 강행(4.26)한데 이어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북한의 6차 핵실험을 핑계로 사드 추가 배치를 강행(9.07)했다. 이로써 미국은 한미일 MD와 삼각 동맹 구축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이에 평통사는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사드 철회투쟁에 매진했다. 9월 6일, 사드 추가배치가 임박했다는 보도에 주민들과 지킴이 약 800명이 소성리로 모였다. 평통사는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상임대표부터 신입회원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투쟁했다. 상근활동가들의 사력을 다한 차량-인간사슬 투쟁은 무려 13시간 이상을 버티며 사드 반입을 저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드 배치를 막지는 못했지만 평통사의 헌신적인 모습은 주민들의 투쟁 의지를 다지고 사드 철거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투쟁이었다.

이후에도 평통사는 사드 기지 공사 및 장비반입 저지 소성리 현장투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2020년에는 미 국방부 자료를 분석하여 소성리 사드(레이더) 성능개량 목적이 미 본토와 태평양 미군 방어를 위해 전진배치모드로 운영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제기하고 사드 성능개량의 실상과 위험성을 알려냈다. 사드부지로 반입되는 돌멩이 하나도 사드 기지 완성과 한미일 MD와 동맹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주민들과 평통사는 불법 공사 저지와 사드 철거투쟁에 결사적인 각오로 나서고 있다.
 

 

27. 한국원폭피해자들의 한 맺힌 목소리를 기록하다(2019.4.25-2020년 초)
 

2019년 8월 8일, 한국 원폭피해자 구술채록 청년캠프에서 평통사 청년들이 원폭피해자 구술채록을 하고있다.


“미국, 일본의 책임을 묻고 싶다.” -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이기열 부협회장 구술채록 중 일제의 강제 징용과 미국의 핵무기 투하로 인한 피폭의 고통을 겪은 한국원폭피해자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잊힌 존재로 살아왔다. 한국원폭피해자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는 일본과 미국의 책임인정과 사죄, 배상을 받기 위한 기초적 사항이지만 해방 후 한국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한 차례도 실시한 적이 없다. 

평통사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원폭 가해 미국의 책임을 묻는 (민간법정) 사업과 피해자 구술채록사업을 결정하고 2019년 4월 25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한국원폭피해자 구술조사 업무 협약’을 체결하여 평통사 청년 회원들이 약 100명에 대한 구술채록을 완료했다. 청년들은 피해자 구술채록 활동에 참여하여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영상 촬영, 녹음, 기록하였다. 평통사는 구술채록 외에도 피해자들의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1972년 합천 원폭피해자 조사서 등 4종류 총11권 분량의 기록을 책자화했다. 핵무기 피해자로 한 많은 일생을 살고, 후유증을 대물림하는 원폭피해자들의 절절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8. 미선효순 평화공원을 세우다(2020.6.13.)
 

2020년 6월 13일, 사건 발생 18년 만에 미군 추모비를 걷어내고 시민 추모비를 안치한 평화공원을 조성하였다.


평통사는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압사사건(2002) 수사기록을 2년 여에 걸친 소송 끝에 한국 검찰로부터 2005년에 확보하였다. 그 결과 살인미군들에 대한 미군 재판부의 무죄평결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갖게 되었다.

한편, 미군이 사건현장에 세운 추모비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고, 2008년 평통사가 제안하여, 2012년 시민모금으로 시민추모비를 만들었다. 그러나 시민추모비를 세울 부지를 마련하지 못해 추모행사 때마다 추모비를 트럭에 실어 사건현장으로 가져와 추모행사를 했다.

이에 평통사는 진상규명을 비롯한, 해결되지 않은 두 여중생 사건의 과제를 기어이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 사건 현장에 평화공원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2020년 6월 13일, 사건 발생 18년 만에 미군추모비를 걷어내고 시민추모비를 안치한 평화공원을 조성하였다. 평화공원은 사고 현장에 떨어져있던 운동화 한 짝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2002년 촛불 투쟁을 벽화로 아로새겼다.

시민추모비 건립, 부지 매입과 공원 조성 공사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오로지 촛불의 효시가 된 미선효순을 기억하는 시민들의 자주적인 모금과 재능 기부로 이루어졌다. 평통사는 미선효순 평화공원을 만듦으로써 한국민의 자주평화운동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다. 

 

29. 2021 평화의 생명줄 민족번영의 젖줄, 남북철도를 잇자 남북철도잇기 한반도 평화대행진(2021)



 

2018년 온 겨레의 감격과 세계인의 지지속에 발표된 남북 판문점 선언이 미국의 대북제재와 압박, 문재인 정권의 무소신과 무능에 밀려 사장될 위기에 놓인 2021년 평통사는 "없는 길도 기어이 만들어서라도 가고야 마는 것이 평통사 정신"이라며 남북철도잇기 대행진 사업을 결의하고 철도노조 등과 한반도 평화대행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행진을  성사시켰다.   
 

행진은 연인원 5천명이 참여하여  남북철도연결 조형물을 이끌고  약 70여일 동안 부산에서 임진각 망배단까지 550km를 이동하는 대장정이었다.  남의 평화열차와 북의 통일열차가 남북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번영·통일 시대를 선도하고 유라시아로 뻗어 나가자는 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남북철도잇기 조형물은 판문점선언/평양 선언의 이행을 바라는 행진 참가자들과 민족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임진각 철도 중단점에 설치하였다.  "외세가 남북 철도 연결을 가로막는다면 우리 민족이 직접 나서서 연결하자. 미국의 간섭과 방해를 어쩔수 없는 것이라거나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자. 우리가 주인이 되어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에 나서자"는 행진단의 호소에 지역과 세대, 입장의 차이를 뛰어넘는 전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것은 가장 큰 성과였다. 
 

30. 미국의 원폭투하 책임을  묻는 긴 여정의 첫발, 원폭국제민중법정 1차 국제토론회 성사(2023)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해 무려 최대 10만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에 책임을 묻고자 하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의 의지를 받아 평통사는 2026년 뉴욕 민중법정 개최과 미국 법정 소송을 향한 첫 걸음을 2023년 6월 제1차 국제토론회를 성사시키며 내딛었습니다. 
 

원폭민중법정 제1차국제토론회는 국내외의 전문가들이 모여 1945년 당시 조약국제법과 관습국제법을 통해 원폭 투하의 위법성을 규명했습니다. 이 원폭 투하의 위법성은 오늘날에도 핵무기 사용이 불법임을 말해주며 한반도에 조성된 극단적 핵위협과 핵대결 정세속에서 핵대결세력과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평화의 수단입니다.


원폭국제민중법정 프로젝트는 2024년 6월 제2차 국제토론회를 히로시마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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