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청년평화아카데미] 11/16 우리땅이 미국의 항공모함이라고? 부평 미군기지에서 고민해보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반도 평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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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청년평화아카데미
[평화발자국] 우리땅이 미국의 항공모함이라고?
부평 미군기지에서 고민해보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한반도 평화
일시: 2025년 11월 16(일), 오후 2시 장소: 인천 부평공원 일대

인천 부평공원 내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과 강제동원 노동자 상 앞에서 인천청년평화아카데미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올해도 인천에서는 청년평화아카데미의 일환으로 평화발자국을 진행했습니다. 중학생부터 30대 청년까지 참여한 이번 평화발자국은 부평 미군기지 일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재 부평공원 자리는 과거 1937년 중일전쟁을 전후로 하여 일본의 기계·금속 공업단지가 부평에 새롭게 들어섰고, 이 공장들은 군수 물자를 생산하기 위한 시설로 전환되었습니다. 부평에 들어선 중공업 공장 중 대표적인 것은 히로나카(弘中) 상공입니다. 히로나카 상공은 1937년 공장 부지를 매수하여 1939년 대규모 기계 공장을 완공하였으나 1942년 전범기업으로 유명한 미쓰비시(三夌)에게 인수되었습니다. 일본군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 부평공원 일대에 인천육군조병창을 두고 각종 무기를 생산했습니다.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애스컴(ASCOM·미육군군수지원사령부) 시티'라는 군수기지로 활용했습니다. 현재 부평공원에는 일제강점기 부평의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해 평화의소녀상과 강제징용노동자상이 건립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해설을 경청하며 듣고 있다
첫 번째 코스인 부평공원은 낙엽들이 무르익고 완연한 가을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공원 내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 상 앞에서 참가자들은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잊지않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보았습니다. 여전히 한일관계를 지난 역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지않은채 나아가고자 하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도 우려섞인 목소리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참가자들은 한국 원폭피해자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세기며 광복 80년이 지난 올해 아직도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 오지 않았음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일본군은 '군위안소'를 설치해 11~27세 조선인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성노예로 만들었습니다. 2025년 11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6명이 생존해 있습니다. 피해자 중 대다수가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생존자들은 고령으로 평균 연령이 90세를 넘습니다.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광복절 하루 전날인 8월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인천 부평공원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당당히 고개를 들고 앞으로 나가는 당찬' 평화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2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인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는 2016년 10월 29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공원에서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습니다. 여기에 세워진 인천 평화의 소녀상은 키 153cm에 단발머리입니다.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는 주먹을 꼭 쥔 채 먼 곳을 응시하며 당차게 나가려는 모습입니다.
인천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 부평시민공원은 미군 캠프마켓이 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 때는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입니다. 한반도에 외국군이 더는 주둔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곳에 건립했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이 강제동원 노동자, 한국원폭피해자에 대한 해설을 경청하며 듣고 있다
2016년 10월 12일 인천 부평공원에 '인천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된데 이어 '인천 일제 강제 징용 노동자상'이 평화의 소녀상 옆에 건립됐습니다. 초조한 표정의 단발머리를 한 소녀와 강렬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중년 남성이 함께 있는 '징용노동자상'은 지영례(94)씨와 그의 아버지를 모티프로 제작됐다고 합니다. 1943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지씨는 위안부로 끌려갈까 봐 학업을 그만두고 인천육군조병창에서 일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천육군조병창에 강제징용된 후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전달하다 발각돼 옥고를 치뤘습니다.
이 동상의 제목 '해방의 예감'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 일본 육군에 의해 부평공원 일대에 건설된 남한 최대 규모의 병기창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징용, 노동착취,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해방을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동상 제작 이원석 작가는 "부평공원은 일본 제국주의 만행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역사적 공간"이라며 "이 작품을 통해 이곳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 땅에 평화를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동상은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와 한국노총 인천지역본부 등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일제 강점기 징용 노동자상 건립 인천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와 시민 900명이 모은 성금 1억 6000만원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24년 7월 27일 유네스코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1천 500여 명을 강제 동원한 일본 니카타현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 설치한 전시 안내문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곳에 강제동원됐다는 것을 명시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1945년 미국의 원폭(핵무기) 투하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된 한국인(조선인)은 약 7만여 명, 사망자는 4만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생존자 중 약 2만 3천 명이 귀국했지만, 원폭증과 정부의 무관심, 사회적 냉대, 극심한 가난으로 형극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맹희 피해자는 1990년 “원폭피해자에게 보상하라”며 음독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생존자 약 1,600명도 대부분 90세 전후의 고령자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우며, 그 피해는 2세, 3세까지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한국 원폭피해자들은 일제강점의 피해자들 중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비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원폭을 투하한 미국으로부터, 강제동원 등 조선을 식민지배한 일본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한국 정부로부터 3중의 무시와 차별, 소외를 당해왔습니다. 원폭 투하 80년이 되었지만 한국원폭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피폭자들의 짓밟힌 인권을 되살리고 무너진 정의를 바로 세워야합니다.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원폭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 전면적인 원폭피해 실태 조사, 2·3세대 피해자 인정, 피해자 생활 지원, 원폭 희생자 추모시설 조성 등에 나서야 합니다.
지금껏 어느 나라도 미국의 원폭 투하의 위법성을 묻지 않았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들과 평통사는 2026년 11월, 뉴욕에서 원폭국제민중법정을 개최해 미국의 원폭 투하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한반도에서 핵대결이 격화되고 핵전쟁으로 민족 공멸의 위기가 점증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온전한 주권을 회복하고, 핵전쟁으로부터 민족의 생명과 자산을 지키며 한반도 비핵화와 핵 없는 세상 실현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참가자들이 부평미군기지의 역사에 대한 해설을 경청하며 듣고 있다
두 번째 코스인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에서는 부평미군기지가 반환되면서 지어진 전시관에서 해설을 이어갔습니다. 일제시기 육군 조병창이라는 이름의 군수공장에서 시작해 미군정 시기 애스컴시티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시민들의 주권을 훼손해온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반환은 되었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오염물질에 대한 정화는 한국민의 혈세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심각성을 나누며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부평 캠프마켓은 대한민국의 영토이면서도 지난 80여 년간 우리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채 단절되었던 터입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을 거쳐 1939년 이후에는 일본군의 조병창(造兵廠 : 군수공장)으로, 1945년 광복 후에는 미군의 군수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1996년부터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시작되고,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의해 반환이 결정되어, 2019년 12월 캠프마켓 A, B구역이 반환되었고, 2023년 12월 나머지 D구역까지 완전 반환되었습니다. 현재 A구역과 B구역(일부) 토양정화가 완료되었으며, D구역은 토양정화 예정입니다. 정화가 완료되면 인천시가 매입하여 시민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부평은 분지라는 자연조건과 경인철도와 항만시설이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군수기지가 입지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부평 평야에 중공업 위주의 생산공장이 건설되고 일본은 만주와 중국 일대로 보낼 병기를 신속히 생산할 목적으로 한반도 내 유일한 조병창인 인천육군조병창을 1939년부터 조성하여 1941년 5월 5일 개창하였습니다. 인천 주변의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데 이어 전국에서 1만 명 넘는 사람들은 강제동원하였습니다.
소총, 군도, 탄환과 포탄은 물론 차량, 무전기, 피혁제품 등 다양한 군수품이 생산되었습니다. 잠수함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병창의 월 생산능력은 소총 4000정·총검 2만정·소총 탄환 70만발·포탄 3만발·군도 2000정·차량 200량 등으로, 부평은 대륙병참기지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했습니다.
1945년 8월 광복 이후 한국전쟁까지 미국은 남한에 주둔한 미군의 물자와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인천육군조병창 부지(산곡동과 부평동 일대)에 주한미육군병참본부인 ‘애스컴시티’(캠프마켓 포함 7개 군사 도시)를 조성하였습니다. 기지 안에는 각 부대의 군사시설과 함께 미군들의 생활을 위한 식당, 클럽, PX, 병원, 도서관, 극장, 체육관, 교회 등의 편의시설이 있었습니다.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의 토양과 지하수가 복합적으로 오염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환경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공동 환경평가절차에 따른 두 차례의 현장조사 결과, 캠프 마켓의 토양에서 다이옥신류, 유류, 중금속, 테트라클로로에틸렌, 폴리클로리네이티드비페닐 등의 오염이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한미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부평 캠프마켓의 오염 정도가 미국 기준치를 넘을 정도로 심각한데도 미국은 치유책임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캠프마켓만이 아니라 다른 반환미군기지에 대해서도 오염치유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미국은 주한미군기지가 자신들의 기준(KISE : 인간 건강에 대해 알려진·임박한·실질적·급박한 위험)으로 볼 때 오염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치유 책임도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폅니다. 우리의 환경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또 국제법적으로 환경오염원인자가 치유 책임을 지게 돼 있는데도 미국(주한미군)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과 그에 대한 일방적 해석을 앞세워 한미 공동환경조사 결과를 인정하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자신의 환경오염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에 따라 우리 환경주권이 침해될 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은 막대한 재정적 부담도 지고 있습니다.
지금(2021년)까지 들어간 국방 예산 중 관련 비용을 모두 합산하면, 소요된 예산만 2400억 원에 이릅니다. 또 앞으로 반환예정된 기지들이 26곳이 남아있고 용산미군기지의 경우 오염정도가 매우 광범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때문에 언론 등에서는 1조 원이 훨씬 넘는 돈을 우리 국민이 부담해야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행사의 문제점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해설을 경청하며
함께 퀴즈를 풀어보는 시간도 가져보고 있다
이어서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행사의 문제에 대해서 퀴즈와 함께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애초 남한만을 방어하기로 약속한 주한미군이 양안분쟁에 개입하고자 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는 불법임을 알리고, 사실상 침략을 하게되는 주한미군에게 기지를 제공하는 한국은 침략을 부인하는 헌법에 위반하는 불법이라는 점을 알아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파괴하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행사를 중단해야겠다는 목소리를 내야하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강행하면 이제는 한미동맹과 손절해야할 때라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한국 방어를 목적으로 주둔한 주한미군에게 우리는 무상으로 기지를 제공하고 방위비분담금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떠 있는 섬 또는 고정된 항공모함 같다"고 언급하며, 주한미군의 역할이 단순히 북한의 공격을 방어하는데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의 더 큰 전략, 특히 중국 견제에 활용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미국은 양안(중국-대만)분쟁에 개입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행사와 주한미군의 임무를 대중 견제/봉쇄 임무로 전환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상 대북 방어를 임무로 하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벗어나는 불법입니다. 또한 대만은 미국도 인정한 중국 영토로 주한미군의 양안분쟁 개입은 국제법상 침략에 해당됩니다. 주한미군에게 영토를 제공한 한국은 유엔 ‘침략의정의결의’ 3조에 따라 침략국가 됩니다. 따라서 주한미군 양안분쟁 개입으로 한국이 연루되게 되면 구한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때처럼 한반도가 미중 대결의 전쟁터가 되어 한국민이 전쟁의 참화를 겪을 수도 있다. 한국의 안보와 한국민의 생명과 자산을 볼모로 잡는 한 불법적인 주한미군의 양안분쟁 개입-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편, 미 동맹국들 중 한국과 일본만이 방위비분담금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매우 불공정한 협정입니다. 주한미군 보유 무기체계의 가치는 약 17~31조 원(국방연구원, 2011) 정도입니다. 한국이 1991년부터 미국에 지원해 온 방위비분담금은 총 25조 원, 직간접 지원비까지 포함하면 무려 102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주한미군 보유 무기체계 가치의 3.3~6배나 된다. 방위비분담금을 한국군이 사용하면 주한미군을 지원하는 것보다 한국군 전력 강화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고 한국 방어에 더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역할이 한국 방어가 아닌 대중 견제 역할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방위비분담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주한미군에게 토지와 시설사용에 대한 임대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인천 부평 캠프마켓 있던 부지 안에서 인천청년평화아카데미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참가자들은 이번 기행을 통해 “특히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것이 기억에 남고,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배웠다”, “한국이 주권을 지킬 수 있는 건강한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고 그래서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더 많이 뉴스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다. 너무 소중하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한 청년은 인천청년평화아카데미에 참여한 후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