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2015. 6. 13] 고 신효순 심미선 13주기 현장 추모제와 경찰의 추모분향소 설치 탄압 규탄 및 항의 행동

평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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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효순 심미선 13주기 현장 추모제

2015. 6. 13(토) 오전 11시, 양주 효순미선로 사고현장


“산과 들을 말리고 나무와 곡식을 태우면서” 다시 온 6월 13일. 13년 전 거친 아스팔트 위에 스러진 두 소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참가자들이 흰 국화를 손에 들고 효촌리 마을 어귀에서 사고현장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추모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효순이 미선이가 살았던 마을 입구에서 추모 행진을 시작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소녀들의 즐겁고 행복하던 길은 갑작스러운 굉음과 괴물같은 장갑차의 무게에 무너져내렸습니다. 소녀들의 꿈도 같이 무너져내렸습니다. 그 길을 100여 명의 참가자들이 소녀들의 발자국 표시를 따라 걸었습니다.

거리에는 신경림 시인이 주신 13주기 추모시가 울려퍼졌습니다. “해마다 이날이면 다짐했지만 / 아름답던 너희 꿈들을 허공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겠다고 / 영롱하던 너희 눈동자 이 땅 곳곳에서 / 꽃으로 열매로 살아나게 하겠다고 / 굳게 굳게 다짐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참가자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숙연했습니다.


엄마와 함께 온 어린 두 소녀가 헌화를 하고 있다.

사고현장에 차려진 분향소 앞에 당도한 참가자들이 분향과 헌화를 마치고 자리를 잡은 후 중앙대 김예인 학생이 해금을 연주했습니다. 낮고 청아한 해금 소리는 두 소녀가 도리어 참가자들에게 힘내라고 잔잔히 위로하는 듯 하였습니다.


추모사를 하고 있는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지난 해에 이어 추모제에 참가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효순 미선 앞에 할 말이 없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다.”는 말로 추모사를 시작했습니다.

이 교육감은 “두 어린 생명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분단 70년이 되었는데 우리 사회 역사 속에 무엇이 남아있고 무엇이 살아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 역사에 무거운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제대로 70년을 만들어 왔다면, 한반도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왔으면 두 어린 학생들의 생명이 이렇게 허무하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효순 미선 죽음이 우리 민족사에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가, 무엇으로 되살아나야 하는가를 다시 다짐하면서 해야 할 일들을 고백하기 위해 모였다. 이 추모제는 여느 추모행사와 다르다고 늘 느낀다. 단지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6월은 민주항쟁, 처절했던 6.25 전쟁이 있어 역사적 과제를 많이 던져준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미래를 오늘의 젊은이에게 전해주고 만들어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정부의 한 사람으로 더 큰 책임을 느끼지만 무력하여 그저 여러분들과 자리를 함께 할 뿐이다. 우리가 무력하지만 힘을 모으면 어느날 이 역사의 새로운 빛, 새로운 길, 새로운 희망이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효순 미선은 떠나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늘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있고 우리와 동행하며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거나 무거워하지 말고 이 자리를 새로룬 미래를 꿈꾸는 출발점으로 삼자”고 했습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평화통일에 나서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박석민 민주노총 통일위원장도 추모사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 미군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라고 한 부모님들의 피맺힌 절규가 기억난다. 다시는 이 땅에서 효순이 미선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죽음이 발생하면 안 된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을 들었던 택시노동자 허세욱 열사도 기억한다. 사고 후 진실을 은폐하려는 한미당국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고 반드시 미국의 사과를 받고 소파도 개정하고 자주권을 확보하자며 13년 동안 달려와 오늘을 있게 한 평통사의 노력도 기억한다.

사고 당시 주한 미 대사였던 허버드는 두 여중생 죽음 이후에 미군의 한강이남 이전을 계획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라도 한미동맹을 지켜야 했다고 2013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일이 있다. 이처럼 효순 미선 투쟁은 미국의 정책을 변화시키고 반미자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해 겨울 미 대사관 앞까지 진출하여 촛불집회를 했을 때 가장 앞에 있던 학생들이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그 때 이 아이들에게 이런 나라 물려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혹시 효순 미선의 그 숭고한 죽음이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당시 진상규명을 위해 만들어졌던 까페가 100개 이상이었지만 오늘 아침 살펴보니 추모비건립위 까페 하나 남아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대로 된 징표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어떤 사건도 잊혀지고 만다.

효순 미선 죽음을 잊지 않으려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 13년 이어지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70년 동안 이 땅을 강점하고 있는 미국과 미군이 한국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는 일이다. 그 징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아닌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냈다는 징표이며 그 징표가 있어야 두 소녀를 잊지 않을 수 있다. 올해 추모제를 맞으면서 그 안타까운, 억울한 처참한 죽음을 추모하는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소녀가 원했던, 우리 국민 모두가 원하는 평화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우리 과제를 분명히 하는 것, 너무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사드 배치를 반드시 저지하는 것, 한일 군사협정을 막아내고 한미일 동맹을 맺고 자위대를 진출시키려는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저지하는 것, 작전통제권을 돌려받는 것은 효순이 미선이가 올해 우리에게 남기는 과제다.

민주노총은 더 쉽게 해고하고 더 낮은 임금에 더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겠다는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정책에 맞서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가 있다. 이와 함께 분단 70년을 평화 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여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선이 효순이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힘을 모으겠다.”

이 다짐에 화답하여 참가자들은 “효순아 미선아 기억할게, 평화와 통일의 꽃으로 부활하라! 불평등한 한미관계 바로잡자!”고 구호를 외쳤습니다.


진상규명 경과와 향후 계획을 보고 하는 추모비건립위원회 권정호 변호사

추모비 건립위원으로 활동하는 권정호 변호사는 2002년 11월 20일과 21일, 주한 미8군사령부 군사법원이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와 궤도차량 운전병 마크 워커에 무죄평결을 내린 날, 그 재판을 참관한 유일한 분입니다. 권 변호사는 진상규명과 관련한 경과보고를 해주었습니다.

“가해 미군을 고발 대리한 본인은 한국인 변호사로는 유일하게 굴욕적인 재판에 참가했다. 죽은 자는 있으나 죽인 자는 없는, 한미관계의 불평등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이 평결에 분노하여 우리 국민들은 진상규명, 살인미군 처벌, 소파개정, 부시사과 등 4대 요구를 내걸고 대규모 촛불 시위를 벌였다.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요구는 아무것도 해결한 것이 없다.

이러한 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평통사는 한국 검찰과 미군 수사대가 밝혀내지 못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신현수, 심수보 두 분 아버님과 함께 의정부지청에 여중생 사망사건 관련 수사기록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리고 미군 측에도 재판 관련 기록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005년 5월 27일, 우여곡절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의정부지청에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평통사를 중심으로 수사기록 검토에 들어갔다. 그 결과 이 사건은 최소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었음을 확인했다.

주한미군과 한국 검찰은 사고 장갑차 운전병의 오른 쪽 시야에 사각지대가 있어 두 여중생을 볼 수 없었고, 관제병은 두 여중생을 보았으나 운전병과의 통신 장애로 전방에 두 여중생이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운전병에게 알리지 못하여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 기록 및 미군들의 진술서를 검토한 결과 “사고 장갑차 운전병은 두 여중생을 볼 수 있었으며, 운전병과 관제병 사이에 통신 장애가 없었다”는 결정적인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는 무죄를 선고한 미군 군사법정의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고 장갑차가 도로 반대편 차선에서 고속으로 질주해 오던 미군 브래들리 장갑차 행렬과 교행하였다는 사실과 교행이 사고의 주된 원인 중의 하나였음을 밝혀냈다. 이는 사고차량 행렬의 선도차량에 타고 있던 중대장이 앞서 두 여중생을 발견하고도 사고차량에 알리지 않는 등 미군 지휘체계상에 중대한 과실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후 평통사는 더 정확하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가능하다면 재심을 청구하기 위해 의정부지청이 누락시키거나 공개하지 않은 자료들을 추가로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이 재판기록 전문이 아닌 요약본을 한국 검찰에 제공했으며 한국 검찰은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들을 공개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것은 미 육군범죄수사대(CID)가 한국 검찰에게 보낸 사진 파일과 사건 재연 장면 및 현장검증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등이었다.

이에 검찰에 추가 자료를 요청하는 한편, 미국 정보공개법에 의거 미군에게 미군이 갖고있는 수사 자료와 재판기록 일체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 청구에 대해 미 육군범죄기록센타는 지난 2006년 9월, 비디오테이프 등 핵심적 자료들은 공개를 거부한 채 일부 자료만 보내왔으며 개인 정보 보호 상 더 이상 자료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미군 측에 다시금 추가자료들을 요청하는 활동을 벌였지만 더 이상 진척을 보지는 못했다.

2010년 10주년을 맞아 추모비 건립위원회를 꾸려 이 추모조형물을 세우고 지난 해에는 이곳 사고 현장에 표지판도 만들어 붙였다. 추모비 건립위원회의 이와 같은 활동은 진상을 규명하고 살인미군에 대한 미군과 미국 당국의 책임있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한 데 근본 취지가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 밝혀내는 것은 추모사업의 출발이자 전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치명적인 탄저균 불법 반입사태에서 보듯 미군들은 13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주한미군은 사드 한국배치를 기정사실로 하고 후보 지역 조사를 한다며 이 땅을 제멋대로 휘젓고 다녔습니다. 한미동맹에 매달려 제 나라 국민의 존엄은 내팽개친 정권 아래에서 우리 국민의 주권은 처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이처럼 미선 효순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에 올해 13주기 추모를 맞아 중단되었던 진상규명 활동을 재개하고자 한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했던 평통사의 진상규명 활동의 토대 위에서 더 많은 시민단체와 국민들의 힘을 모으고자 한다. 국내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의 양심적인 법조계, 평화인권단체와 연대해서 미국에 정보공개청구, 국제 소송도 추진할 것이다. 더 전문적인 역량들을 모아내고 더 체계적이며 집요하게 진상규명 활동에 나서고자 한다.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은 추모조형물을 사고 현장에 세우고 미군없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통일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에도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의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참가자들은 큰 박수로 권 변호사의 진상규명 활동계획에 화답했습니다.


효순미선이를 기억하는 '기억의 나무'를 심고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이어 이재정 교육감과 박상희 대표, 그리고 박석민 통일위원장은 미선이와 효순이를 기억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담아 사고 현장 표지판 위쪽에 주목을 심었습니다. 평통사는 지난 2002년 8월 사고현장에 나무를 심었지만 미군들이 자신들의 추모비 뒤로 옮겨가버렸습니다. 이에 다시 사고현장에 평화의 나무를 심는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기억의 나무를 심은 후 참가자들은 나무 주변에 노란 꽃들을 심었습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 진상규명 등 남은 과제를 기어이 해결하겠다는 다짐을 함께 심었습니다. 이 날 추모행사에는 의정부 시민들과 민주연합노조 조합원 등 인근 지역에서 많은 분이 참가했습니다. 멀리 부산에서도 평통사 청년회원이 참가하는 등 새 얼굴들이 많아 더욱 뜻깊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추모제가 끝난 후에도 사고 현장 표지판을 쓰다듬고 나무에 물을 주며 오래도록 그곳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효순아 미선아~ 잊지 않을께! 진실을 꼭 밝혀 줄께! 사랑한다!


경찰의 광화문 시민 추모 분향소 설치 탄압 및 항의 행동 

오후 2시,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

현장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광화문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의 추모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점심도 거른 채 이동했습니다.


집시법 적용 대상도 아닌 추모행사에 대해 미신고 불법집회라며 10분만에 추모비 차량을 견인하고,
항의하는 행사관계자를 불법 연행하였습니다.

오후 2시 10분경 광화문 세종대왕상 부근에 추모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추모조형물을 실은 차량을 정차시켰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행사 차량을 무조건 고착시키고 차량 이동을 요구했습니다.
행사 주최측이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차량을 이동하겠다고 경찰에 여러 차례 고지하고 차량을 이동시키려했지만 경찰은 이를 가로막고 견인차를 동원하여 차량을 무단 견인하였으며 이에 항의하는 행사 관계자를 불법 연행하였습니다.

경찰은 자신들의 행위를 집시법 제6조 1항(옥외집회 및 시위의 신고 등)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으나 이는 일반적인 옥외집회 및 시위의 48시간 이전 신고에 해당하는 것일 뿐입니다. 집시법 제15조(적용의 배제)는 관혼상제 등에 관한 집회는 집시법 대상이 아님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추모분향소 설치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경찰의 법집행은 집시법에 명백히 어긋나는 것입니다.

설사 경찰이 추모행사를 집회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행사 차량을 일방적으로 고착시키고, 이동하겠다는 차량을 가로막고 견인한 것은,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 하더라도 무조건 해산 명령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한 불법 과잉행위입니다.

이에 평통사와 추모제 준비단체들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불법 부당행위를 규탄하고 분향소를 차리려던 곳에 두 소녀 영정을 든 채 연좌하여 밤늦게까지 농성을 벌였습니다.


미 대사관 앞에서 추모 1인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추모분향소도 차리지 못한 거리에 세운 두 여중생의 영정앞에서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
많은 시민들이 효순이 미선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추모행사 차량 강제 견인이 무리하다고 판단했는지 1시간 만에 차량을 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연행된 행사 관계자를 48시간 꼬박 가두었습니다. 게다가 마포경찰서 지능팀장은 연행자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하자 “화장실에 가서 울지 마세요.”라면서 희롱하고, 한 지능팀 형사는 신원진술 거부에 따라 지문 채취를 위한 신체압수수색영장 집행과정에서 “손가락을 꺾더라도 지문을 채취하고야 말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분향소를 차리지 못한채 길거리에서 추모 농성을 하던 참가자들은 저녁 10시경에 추모농성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서울에서의 추모행사가 경찰의 방해로 중단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추모제 참가자들이 미 대사관을 바라보는 자리에 연좌하여 항의시위를 전개하자 오가는 시민들은 어떻게 분향소를 차리지 못하게 하느냐며 분개해 했습니다. 한 시민은 영정을 향해 큰 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중학생 때 이 사건을 접하고 기자가 되어 공정보도에 나서겠다고 다짐하여 기어이 기자가 된 한 일간지 기자가 취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일이었습니다. 13년 전 사건은 이 나라 청년들에게 자주의 정신을 새겨준 역사의 용광로였던 것입니다.

추모제 준비위는 추모행사를 적극 돕지는 못할망정 이를 가로막은 경찰의 불법 부당한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비록 분향소를 제대로 차리지는 못했지만 어느 해보다 추모의 마음은 뜨거웠으며 이를 가로막은 경찰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도 높았습니다.
올해 추모행사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평통사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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